태전동에서 여성브랜드로 의류판매한지 9년째 접어든다. 2008년 7월경에 과로뇌출혈로 119에 실려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고 한달을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왼쪽 손과 왼발을 못쓰고 말도 어눌한 상태에서 퇴원했다. 할 일 많고 한참 공부해야할 당시 고(2) 중학생(1) 학교 뒷바라지도 해야 하는데, 몸도 말도 제대로 되지 않고,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도 거의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류매장의 문은 열어야 하겠기에 일하는 직원을 두고 영업을 했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너무도 나약해진 내 자신속에서 매일 남편의 부축을 받고 살면서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나? 이대로 죽음으로 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공포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6년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원을 다니며 예배를 드린 나였지만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아침에 식구들이 모두 집을 나가고 나면 두려움에 휩싸여 힘들게 기도원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양무리순복음교회를 섬기던 분이 찾아와 양무리순복음교회 와서 신유의 은사를 받은 목사님의 기도를 받아보라고 네 차례나 권유를 받았지만 난 아무 곳에나 가서 “좋다”고 머리 내밀고 안수기도 받는 그런 신앙인 아니라 하면서 절대 거절했다. 매장을 정리하고자 권리금을 붙여 매장을 매물로 내 놓았다. 그 날 오후, 날 양무리순복음교회로 인도하려는 분이 와서 안수기도 받고 고침을 받고 애들 키우고 매장을 계속할 생각을 해야지! 왜? 가게를 내놓을려고 하느냐고 화를 내며 가는 것이었다. 곰곰히 생각하다 교회는 옮기지 않아도 내가 신유은사가 있는 목사님께 안수받고 나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양무리순복음교회에 첫 발을 내 디뎠다. 지금의 교육관 성전에 성도들의 박수소리 음향소리 때문에 머리가 더 아프고 예배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말씀이 끝나고 어떤 분이 나를 앞으로 끌다시피 데리고 나갔는데, 목사님의 안수기도에 정신이 몽롱해지고 뒤로 몸이 자꾸만 넘어지려 하는걸 난 진땀을 빼며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왜 힘이 없고 넘어지려하는지 의심하면서... 먼저 섬기던 교회에서 주일 11시 예배를 드리고 양무리순복음교회의 신유집회의 모든 예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드렸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 목사님의 안수기도에 방언을 하는 상태에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두 손을 모으고 가슴을 두드리며 얼마를 방언기도를 하며 예배를 끝마치고 또 다음 예배시간에 임재를 통해 하나님께서 날 고쳐주시겠다는 말씀을 받았다. (단 10:19)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의 말씀이었다. 말씀을 받은 이후로 더욱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배가 꿈틀거리며 조금씩 안 좋았던 부분이 회복되고 몇 개월동안 매 예배 때마다 주님의 임재로 아픈 몸이 치료되었다. 그러기를 두달 여.. 걸음도 온전해지고 손놀림도 자유하게 되고 어눌한 말도 아파했던 마음의 상처까지도 모두 다 치료받았다. 여호와의 임재의 재단... 이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양무리순복음교회에 등록하고 치료의 은혜를 입은 주님과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며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예수 믿기 전, 절에 다니는 언니의 영향으로 절에도 다녀보고 할머니 때부터 불교를 믿던 집안이라 당연히 교회와는 담을 쌓았다. 친정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이런 저런 안 좋은 일이 자꾸 생기자 친정 언니는 “가족들이 절에 가서 빌어야 되는데 나 외에는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으니 집안이 안되지!”하면서 절에 다닐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가까운 절이 어디없나? 찾아보고, 가보기도 했지만 멀기도 하고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태전동으로 이사하여 부업을 시작하였고 힘들지만 견딜만 했는데, 어느 날, 부업을 하는데 갑자기 기운이 쫙 빠지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 매일 같은 생활인 이런 삶에 회의가 느껴졌다. 이러다가 내 평생 이모양 이꼴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나는 진정 누구인가? 라는 존재의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답답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생각하기를 “아 이렇게 우울증이라는 것이 와서 사람들이 죽는다더니 이런 경우인가 보다”하고 멍하니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구나! 나도 의지할 종교를 찾아 이런 어둠의 생각에서 벗어나고 새 희망의 빛을 받아야 우울증의 늪에 빠지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TV의 연말 시상식에서 보면 수상자들이 거의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소감을 들을 때면 정말 교회에 다니면 저렇게 잘 풀릴까?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일까? 진짜 경험한 사람이 있을까? 그런 교회가 있으면 믿어봐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양무리순복음교회』에는 하나님을 경험한 분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때마침 큰아이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엄마가 『양무리순복음교회』로 인도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가 아토피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한여름에 열도 많은 아이라 시도때도 없이 긁어서 상처와 멍이 심하게 생겨 이 병원 저 병원 큰 병원도 다녀보았지만 약은 바를 때 뿐이고 차도가 없었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인 것 같아 한없이 울기만 하다가 서툴지만 집에서 기도를 드렸다. 교회 집사님께서 내 마음을 알고 믿음으로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으면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는 말을 듣고 매주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꾸준히 받았다. 기도 받은지 두달 쯤 되어서 부터 호전되기 시작하더니 바로 그 심하던 아토피 피부병이 깨끗이 치료가 되었다.
어느 날, 부업을 무리해서 일하다 보니 허리가 갑자기 아파 오더니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아파 와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촬영했는데 의사선생님이 “아직 젊으신데 벌써 퇴행성이 왔네요!”하는 말에 앞이 캄캄하였다. 큰일났구나! 하는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목사님께 기도를 받아야지! 그 길만이 내게 살길이라” 생각하고 주일날 목사님께 사정을 말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고쳐주십니다.’말씀하시며 안수 기도를 해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아픔의 고통이 오래 갈 것만 같았는데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뻣뻣하던 허리가 이리저리 누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너무 놀라고 기뻐서 무릎꿇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허리를 고쳐주신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많이 외치며 기도를 하였는지 모른다. 퇴행성 허리 디스크를 고쳐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늘 동행하여 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감사하여 매일 새벽 기도를 드리며 호산나 성가대에서 찬양으로, 주일 점심식사 후의 설거지 봉사로, 영광돌리며 기회 닿는대로 복음을 전하고자 힘쓰고 있다. 치료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78년 어느날, 이웃에 사는 분의 전도를 받아 교회를 갔다가 너무나 어색해서 뒷걸음질을 쳐서 나왔으나 계속된 전도에 결국에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목사님의 설교에 졸기만 하여 무슨말씀을 하셨는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도 모르고 주일에 일이 있으면 별다른 생각없이 교회를 빠지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그러던 중 성남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저희 딸이 모란 근처에 집을 알아보자하여 주차를 하고 들어간 곳이 이흥순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부동산 사업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권사님께서 제가 살 집도 열심히 물색해서 알아봐 주시는데, 그 보다 더 교회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하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은 교회면 저도 다니겠다고 하여 권사님을 따라 양무리순복음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양무리순복음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알아듣기 쉽고 귀에 쏙쏙 들어오고 마음에 와 닿는 신기한 은혜가 내게 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2013년 1월 갑자기 다리가 저리고 아프고 쑤시고 통증이 점점 심해져 견딜 수 없어 성남 정정형외과 병원에 가서 MRI 진찰을 받았더니 뜻밖에도 요추 3번, 4번, 5번 협착증에서 오는 현상이며 빠른 수술을 권유하여 3일 후, 1월 14일(월)에 수술하기로 결정하였다. 토요일에 목사님들께서 심방을 오셔서 기도를 받았으나 통증은 여전했다. 다음날(1월 13일) 주일이라 아픈 다리를 이끌고 주님앞에 나아가 간절하게 “하나님! 나 어떻게 합니까? 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주님 내 아픈 다리를 고쳐 주시옵소서!” 예배중 엎드려서 기도를 간절히 드렸다. 예배가 끝날즈음 목사님께서 강대상에서 이정자 집사님! 하고 호명을 하시더니 집사님! 주님께서 수술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직접 고치실터이니 이번주부터 열심히 예배에 나오십시요! 하는 것이었다. 이 때 나도 모르게 “목사님의 말씀이 믿어지면서 아멘”를 외쳤다. 그 때부터 아픈 다리를 이끌고 모든 예배를 다 참석하는데 너무도 고통스런 아픔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고쳐주신다고 말씀하셨으니 믿습니다. 믿습니다. 속으로 외치면서 기도를 드리고 안수를 받았더니 신기하게도 2주만에 통증이 싹 사라졌다. 목사님의 선포하시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 1개월간 꾸준히 안수를 받았더니 완전히 치료되어 걷고 뛰어다닐 수 있게 회복되었다.
허리 협착증을 치료하신 예수님은 “나의 좋은 치료자”이십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더욱 4차원의 영성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기로 다짐합니다. 저와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목사님들의 영성있는 생명의 말씀에 큰 권능이 나타나고 살리는 주님의 영의 역사는 모든 인생을 살리는 큰 능력이 있음을 직접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사님들께서 모든 성도님들을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영적인 말씀을 잘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희 교회 성도님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처음 오신 낯설은 성도님들까지 미소와 사랑 그리고 섬김으로 헌신하며 저에게도 용기와 겪려를 아끼지 않고 기도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나의 병을 치료하신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예수님을 전하며 내 작은 입으로 간증하며 교회의 부흥에 힘이 되어 열심히 살겠습니다. 할렐루야!
일찍 예수님을 영접하여 열심히 교회봉사도 하며 믿음생활을 하던 중, 예수믿는 청년이 구혼을 해 왔지만, 결혼조건이 맞지 않아 내 조건에 맞는 신랑감을 찾아 불신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내 조건에 맞는 불신 결혼은 삶의 고난의 시작이었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여 돈벌기 위해 직장을 다녀야 했고 겨우 주일성수 교인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러던 2011년 초, 감기 몸살과 피곤함이 계속되어 병원 검사를 하니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약을 먹으면 치료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기침이 심해져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천식”이라 했다. 처방해 준 약을 다 먹고 난 후, 10일 작정금식 기도를 하였다. 금식 후 보호식 2일째 되는날 회식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에 고기를 먹고 말았다. 다음 날부터 얼굴과 몸이 퉁퉁 붓기 시작하여 다시 3일 금식을 하였다. 그러나 더욱 증세가 악화되었고 급기야 물도 마실 수가 없었다. 차병원의 정밀검사 결과 “폐암 말기”라고 했다. 또한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고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담당의사는 저를 간호하는 언니에게 “20일을 넘기기 어려우니 환자 곁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암세포가 다 전이되었음에도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주시면 마음이 담대해지고 죽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앞에 불순종한 일, 주의 종을 향한 말, 등등 회개기도가 나오는 것이었다, 목사님께서 병원에 오셔서 주신 말씀을 붙들고 더욱 간절히 병원침대를 붙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데, 죽음보다 염려되는 것이 있었다. 죽음 후 하나님 앞에 설 때를 생각하니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운 것 뿐이었다. 평생에 주님을 위하여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말씀이 불현듯이 두려움으로 엄습했다. 목사님께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여 주님의 치료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차피 통증의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밤낮없이 오직 기도에 매달렸다. 기도하는 중, 신기하게도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것같은 찬송가가 들리는데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죄 짐을 풀었네”1-4절까지 찬양이 내 귓전에 울려 퍼졌다. 또한 (출 15:26)“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니라”하는 말씀을 받았다. 병원의사가 죽음을 준비하라는 20일이 지나고 60일이 지났는데도 도리어 몸의 컨디션은 점점 좋아졌고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기도로 환자복을 입고 주일날 본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드디어 3개월 째에 퇴원하였고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각오로 화요일과 금요일 신유집회에 참석했는데, 신유집회 시간 목사님의 안수기도 때마다 성령의 불이 강하게 임하였으며 성령의 불세례를 수차례 받으면서 온몸에 퍼진 암세포가 죽어 없어지는 영적느낌을 받았다. 이후 몸은 급속히 좋아졌고 2011년 7월에 폐암말기 사형선고 판정을 받은 내가 지난해 12월초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 CT촬영을 한 결과, 담당의사는 CT필름을 보시면서 암세포가 완전히 없어졌고 완치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저는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작년 초에 좋은 교회가 있다 해서 다른 교회를 잠시 다녔으나 병든 몸으로 다시 양무리순복음교회를 찾게 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는 양무리순복음교회임을 다시금 증거해 주신 것이다. 병든 몸으로 교회를 다시 찾았을 때,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 교회 목사님들께 감사드리며 생명수 한의원 부부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입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손길로 병원 치료비와 생활비, 자녀 양육비까지도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셨다. 폐암말기, 죽음에서 생명을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남은 인생은 세상의 헛된 욕심버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며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믿음으로 살고 전도하며 찬송하면서 영혼구원을 위해 살렵니다. 할렐루야!
2009년 봄에 양무리순복음교회에 처음 나왔다. 장로교회를 섬기던 중 40세된 결혼한 아들이 밤에 잠을 자다 깨어 물 먹으러 방을 나왔다가 주저 앉아 있는 것을 며느리가 보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들을 119를 불러 병원에 가니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한다고 해서 서둘러 수술실로 바로 들어갔다. 기가 막혀서 예수님만 찾으며 “주님! 의사의 손길 붙들어 주셔서 핏줄하나 잘못 건드리지 않고 주님! 수술 성공케 해 주셔서 정상인으로 생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중에 깜박 잠이 들었다. "아들이 꿈속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엄마”하며 나 괜찮으니 걱정 말라해서 아들의 몸을 위아래로 만지다가 잠에서 깼다". 수술후에 주님만 의지하며 뇌출혈로 정상의 몸이 아닌 아들을 간호하며 생활하던 중에 병원에서 어느날 며느리가 "어머니" 하면서 양무리순복음교회 전단지를 주며 이교회에 나가보세요! 하나님의 치료의 역사가 강하게 임하시는 교회인가봐요! 하며 이야기를 하기에 속으로 “며느리가 자기 남편이 아프니까 얼마나 답답해서 저럴까?” 하고 그래 가보자! 하고 교회에 와서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 말씀그대로 세상의 것 비유없이 오직 말씀만으로 원고도 없으신 상태에서 말씀을 선포하시니 예수님의 능력과 권능이라!! 예수님께서 목사님께 큰 은사를 주셨구나! “그래 바로 여기다” 하고 “내가 찾던 목사님이시구나!” 하고 수요예배 나와서 그 첫 주일 날에 즉시 온 식구가 교회에 등록을 하고 열심을 내어 주님께 간절히 간구하며 모든 치유의 역사하심을 의지하며 예배를 드렸다. 수많은 목사님을 만났었는데 이런 확신이 없어서 안수기도 받지 않았었는데.. 아들의 건강이 예배의 단을 쌓으면서 좋아지고 있다. 화요 축복집회 기도시간 중에 목사님 안수기도 해주시니 발가락이 펴졌다고 아들이 이야기 해주었다. 기뻐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목사님께서 아들의 병 고침받는 날까지 알고 계시나 믿음이 더욱 견고해져서 시험들어 믿음이 약해질까 염려하셔서 알려주지 못하나 오직 말씀, 찬양 모두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하라고 당부하시며 치료의 확신을 주셨다. 지금은 아들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시간에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임재를 통하여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신다.
주님의 치료하시는 손은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났다. 작년 여름부터 발바닥에 종기가 생겨 별약을 다 썼어도 낫질 않았다. 왜냐하면 혈당 수치가 높아 치료되지 않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대형 병원에 가서 수술을 권장하는데, 수술을 받아도 완전히 치료된다는 확신이 없었다. 수술을 포기하고 주님의 치료의 손길을 기다리며 간절히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도중 목사님의 안수기도로 발바닥의 종기가 씻은 듯 깨끗이 낫게 되었다. 예수님의 치료하시는 손! 너무도 감사하다. 말씀하신바 못 고치실 것이 없으시는 하나님 너희의 믿음을 굳건한 반석위에 세우라하신 말씀 의지하며 헌신하시는 두 분의 목사님! 오직 성경말씀만을 대언하시는 귀한 목사님 모시고 신앙생활 하게 되어 너무 너무 기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할렐루야!
여고 1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하던 남편을 만나 두 딸을 낳아 키우면서 신앙으로 양육하려 애쓰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하며 남편과 저는 교회에서 필요한 여러곳을 봉사하며 기쁨의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뜻밖에 평소에 존경하고 신뢰하던 목사님의 좋지 못한 모습을 보고 도망치듯 그 교회를 나와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큰 교회에서 주일예배만 드리는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지냈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왜? 저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시느냐”며 투정을 많이 했지요! 당연한 결과로 경제적 어려움과 여러 가지 힘든 일이 함께 겹쳐 왔다. 비교적 어려움 없이 성장하고 살아왔던 저에게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들을 보내다 2011년 9월 건강에 이상이 있어 찾았던 병원으로부터 간경화 말기이며 이미 간기능은 70~80%가 손상되어 짧게는 1개월, 길면 3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의 판정을 받았다. 분당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한 내가 사는 길은 오직 간이식 수술뿐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간 이식 방법을 찾기 위해서 검사했으나 간 조직이 맞지 않아 이식받을 수 없었다. 타인의 간을 기증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이 어렵고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간 이식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데, 제 차례까지 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외에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양무리순복음교회를 소개받은 것은 분당 서울대병원에서였다. 제가 누워있던 병실로 두 분 권사님이 방문하던 날을 기억한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고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안수기도 받는 분들을 좋지 않게 여기고, 성격도 까칠한 저에게 전도지를 주시는 권사님의 전단지를 흔쾌히 받고서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음날 양목사님과 장목사님이 심방을 오셔서 안수해 주셨다. 목사님들께서 두 번째 심방오시고 기도해주셨던 날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께서 “내가 고쳐주리라! 내가 고쳐주리라” 두 번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리며 예수님께서 맑은 물이 흘러내려가는 강가운데서 새파란 새싹처럼 싱싱한(저의 간이라고 생각되어졌다)것 두 쪽을 들고 그 강물에 씻은 후, 건져내어 저에게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이었다. 목사님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그 때 저의 모습은 복수 때문에 배가 불러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였으며 황달로 인해 눈까지 노랗게 되었고 호흡까지 힘든 상황인데도 나는 꿈에 만난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 제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방법 외엔 다른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생면부지의 타인으로부터 간을 기증받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분의 간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연락이 왔다. 문제는 기증자와 나의 생체 조직이 맞아야만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는데, “기증자의 간이 나에게 너무도 딱 맞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요! 기적이었다.” 간 기증자가 있어도 조직이 맞지 않으면 수술이 불가능한데, 정확히 맞는 것이었다. 아산병원으로 병원을 옮겨 12시간에 걸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고 무균실에서 1개월 동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였고 다시 1개월 후, 2개월만에 완전히 회복되어 퇴원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되찾은 후,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전에 실패했던 신앙의 문제점과 해답도 얻었다. 나 때문에 조롱과 멸시와 큰 고통을 견디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감격과 감동으로 눈물 범벅이 되어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예배를 통해 주님은 내 상처난 심령을 치유하여 주셨다. “이제는 주님의 증인으로 살겠습니다. 제게 힘을 주세요! 주님의 기쁨이 되겠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죽은 나의 두 개의 간을 다시 살려주시고 생명을 연장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한 나를 양무리순복음교회로 인도해 주신 권사님들께 감사드리며, 쉽게 사람을 사귀지 못하는 저에게 다정하게 다가와서 손잡아주시고 사랑을 보여주신 우리교회 성도들의 따뜻함에도 감사드린다. 나를 살리신 예수님을 평생에 증거하며 주님의 기쁨 되어 살기를 다짐한다. 할렐루야!
저는 유복한 가정에서 3남매 중 둘째로, 지극히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왔습니다. 순탄치 못했던 결혼생활, 홀로 아이를 키워야하는 인생의 이중고를 겪으며 삶을 이어가던 중 서른 중반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동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주님을 체험하고, 내 삶에 계시는 주님을 느끼고 싶었지만, 매번 주님은 아주 먼 곳에 계신 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것을 벗어나지 못한 채 술을 삶의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술은 저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건강은 악화되어 나날이 야위어갔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과 병든 노모와 어린 딸을 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저는 점점 나약해져갔습니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 이송되는 그 날까지도 저는 주님보다는 고단했던 삶의 끝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눈앞이 흐릿해져가고, 사지가 마비된 상태로 병원을 찾았지만, 상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신장 부전, 장 협착, 간경화, 췌장염, 대사성 산증, 2번의 심정지 등 역시나 저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의 남은 시간이 2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는 병원 측의 설명에 모두들 망연자실했습니다. 저의 가족들, 교인들 모두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장기들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기계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고, 의사선생님들 또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서울대학병원에 치료를 받으려고 가족들이 급히 문의한 결과, 참조은병원에서 저의 진료와 사진 자료를 전해받고서는 “저희 병원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하니 보내셔도 소용없습니다”라는 통보를 받고 온 가족들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희망을 말하지 않았지만 두 목사님께서는 끝까지 제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끊임없이 중환자살에 심방 오셔서 기도하시던 날 양목사님께서 안수를 하시는데, 주 예수님의 강한 권능의 손이 만져주시고 장기가 확 풀리고 움직이면서 “내가 고쳤다” 그러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두 목사님의 끊임없는 안수기도로 인해 죽어있던 장기들이 다시 꿈틀거리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이 없었던 제가 의식이 돌아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환자실에서의 16일이라는 긴 사투를 끝내고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게 되었고 빠른 속도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뻐 축하해주시면서도 무척 놀라워 하셨습니다. 병원 의료진들도 저의 회복속도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의 저는 온 몸의 장기들이 제 기능을 찾고, 예전보다 더 건강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간증문을 쓰면서도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능력을 체험한 저로서는 한없는 감사와 찬양만이 제 마음 속 깊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전의 저는 제 인생을 제가 스스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주님은 지금껏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주님은 제 삶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십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새로운 생명을 통해서 이제는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송축하며 주님을 전하는 증인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의 간증이 단순히 죽음의 강을 건넜다 돌아온 삶의 이야기나 주님을 증거하는 도구가 아닌 주님을 향한 진정한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제 인생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셨기에 저는 주어진 새로운 생명을 통해서 주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주님이 하셨음을 고백하고 또 고백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할렐루야!
예수님 영접한지 13년이 되었다. 결혼해서 보니 시부모님들께서 모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데, 이상하게도 자녀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결국은 나도 자연스럽게 남편을 따라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30년 동안 교회를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내가 딸을 시집보냈는데, 그 딸이 결혼한지 7년이 되어도 애기를 낳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도 급한 나머지 대전에 있는 계룡산에 가서 무작정 기도같지 않은 기도로 무조건 딸 아이에게 애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계룡산 산기슭에서 기도하는 나에게 먼발치에서 이번 달에 애가 들어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기쁜 마음으로 ‘아멘’하고 산기도를 마치고 내려와 곧 바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산에서 들은대로 얼마되지 않아 딸아이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첫 딸을 출산했다. 사실 나도 결혼하여 둘째를 낳았을 때, 둘째가 태어난지 3일만에 죽는 아픔이 슬픔이 있었는데, 옆집 아줌마가 딸을 낳고 병들어 젖을 먹일 수가 없었다. 나도 애기를 낳았지만 내 아이는 죽고, 젖은 불고, 결국 그 딸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그 딸을 수양딸을 삼아 양육하게 되었다. 수양딸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고 있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교회 나갈 때는 계룡산에서 들었던 음성이 있어서 두려웠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교회 나가는 나에게 마귀의 훼방이 믿음의 길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두려움을 가져다 준 것임을 뒤늦게 깨닫고 마귀를 물리치는 기도를 하자, 두려움의 마귀는 떠나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다.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고 있던 중, 아들이 경영하는 학원 기사의 매형이 위암 판정받고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 기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 사람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치료된다는 마음의 확신이 왔다. 결국 그 사람은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그 분이 섬기는 교회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깨끗이 고침을 받았다. 나는 기도 중, 가끔 눈이 번쩍여서 눈을 뜨면 하얀 보자기 쓰신 분이 강물이 출렁거리는데 획 지나가는 환상을 보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 믿음생활을 잘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 전전하다 보니 기도생활이 소홀이 되어 가까운 순복음교회를 찾아 신앙생활하기로 마음먹고 순복음교회를 찾던 중, 양무리순복음교회 간판을 보고 본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와 금요신유집회 참석한지 3번째 집회 때에 목사님께서 오늘 집회에 참석하신 분 중 목디스크로 고생하시는 분이 다 나았습니다. 하는 말씀이 선포되자 “아멘”하고 받았더니, 목 디스크로 아팠던 몸이 깨끗이 다 낫는 신유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계속 신유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던 중, 목사님의 안수기도로 무릎관절이 씻은 듯 다 고침을 받았다. 2007년도부터 양무리순복음교회 집회에 나오기 시작하였으나 주일은 여전히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나갔다. 그러던 중 양무리순복음교회로 등록해야겠다는 마음이 불일듯 일어났고, 2009년 6월 양무리순복음교회 등록하였다. 2010년 1월 달 신유집회 때에 항상 손이 저리고 아팠었으나 기도하는 도중 환상을 보여 주시고 다 나았다는 확신의 믿음을 주셨다. 그 뒤로 지금까지 손 저림의 증상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편안하다. 교회를 잘 나가던 아들이 실족하여 현재 중단하고 있어 교회 나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많은 양무리순복음교회로 인도해 주신 치료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
고향 해남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에 상경하여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보리라 하는 노력으로 이일 저일, 힘든 일 마다않고 열심히 회사에 다니면서 기술을 익혔고 기술을 습득한 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면사 기술사가 되어 봉급도 남부럽지 않게 많이 받으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아내와의 사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시부모님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왜! 고추 하나 달고 나왔으면 좋으련만~~제가 들어도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시부모님들은 사대부 집안에 아들이 있어야한다고 하는 고정 관념이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줬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는 하나님을 믿으면 아들 낳는다는 말에 그 길로 동네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혼잣말로 교회다닌다고 아들 낳냐? 돈이나 갖다 바치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 친구의 소개로 태전동에 개척교회가 있으니 그 곳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하는 말에 아내는 2000년 5월 첫주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면사 기술자로 열심히 일하던 중, 아내가 공장을 설립하여 우리 공장을 갖자고 했을 때, 나는 펄쩍 뛰면서 돈이 어딨냐? 했는데, 아내가 시부모님들을 설득하여 그 당시 큰 돈인 3,000만원을 받아 와서 공장 임대를 얻고 기계를 5대를 사들였다. 기계값만도 3,500만원이나 되는데, 나머지 공장 세는 어떻게 하느냐? 했더니 살고 있는 방을 빼서 내면 되고 나머지는 빚을 내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아내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공장을 주신다고 했다면서 공장 이름도 “산성섬유”로 주셨다고 하면서 밀어 부쳤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공장은 시작되었는데 면사의 달인과 같았던 나는 공장에서 가공해 내는 실마다 주문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주문은 밤새도록 24시간을 가동해도 다 마치지 못할정도로 일이 넘쳐났다. 그러다 보니 들어오는 수입은 매달 공장세와 빚을 갚고도 700만원~800만원 씩 돈을 버는 것이었다. 돈을 버는 재미가 들고 빚고 다 청산하고 있을즈음 같은 계통의 사장단들의 모임이 있어 회식자리에 나가게 되었는데, 갈 때마다 술과 도박(특히 카드놀이)이 계속되었다. 도박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못했던 나도 술을 마시면 나도 모르게 도박에 빠지게 되었고 도박은 점점 큰 판으로 벌어졌다. 아내와 나는 숨박꼭질하듯 일이 끝나면 나를 데리러 오는 무리들을 따라 숨어서 도박을 하고 아내는 나를 찾으러 백방으로 다니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기까지 하였다. 결국 도박으로 인하여 지게 된 빚은 2억원이 넘게 되고 신용불량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도박빚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있을 때, 양무리순복음교회 목사님이 심방 오셔서 그러면 나랑 같이 기도원에 함께 가자! 해서 처음으로 교회 나가 다음날 금식기도원으로 올라가서 목사님과 함께 10일 금식을 하게 되었다. 금식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때이지만 목사님께서 때때마다 함께 금식하시면서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는데, 제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그렇게 힘들다던 금식기도를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금식기도를 마치고 술과 도박과 담배를 끊게 되었고 은혜받은 날부터 일이 재미나고 힘들지 않으며 항상 기쁨이 심령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열심히 교회 출석하면서 목사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에 순종하기로 다짐하면서 주님만을 바라보고 공장일에도 최선을 다했더니 2억원이 넘는 빚을 딱 12년만에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2014년 9월에 신장에 담석이 있어서 떼굴떼굴 구르듯 너무 아파 119를 불러서 응급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목사님이 떠올라서 새벽녘인데 전화로 기도를 요청하고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전화 안수기도 받고 불과 1분도 채 안되어서 아랫배가 시원하고 소변이 마려우면서 119에서 내려 길에서 소변을 보았는데, 아픈 것이 싹 사라지고 그 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아내의 헌신과 봉사의 결과로 제 여식 중에 큰애는 대학에 4년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서도 거의 돈이 들지 않도록 하여 석사학위를 받게 되었고 지금은 좋은 병원에 건강하게 근무중입니다. 저를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신 나의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돌립니다. 부족한 저를 주님께서 교회의 장로로 세워주심에 감사드리며 목사님의 가르침을 따라 죽도록 충성하며 순종하기를 굳게 다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행복한 생활로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우상을 섬기는 완고하신 부모님의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삶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였습니다. 1988년 3월 결혼하였는데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였고 아내 마저 2년후 가출하여 결국 98년에 이혼을 하였습니다. 술로 타락하며 고통과 괴로움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어느날 죽음을 결단하고 자살까지도 시도했습니다. 그러던 2000년 11월 전도를 받아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복희야 눈을 뜨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겔 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음성을 듣게 되었고 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믿으며 은혜속에 살아가도 힘든 일을 하다보니 몸이 많이 아프고 또 많이 피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양무리순복음교회 다니시는 조백연 집사님이 우리교회를 나가보자고 하여 2008년 12월 24일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크리스마스 이브날 양무리순복음교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주일(성탄절)에는 교회에 등록까지 했습니다. 교회에 등록하던 첫 주일 예배 때, 목사님의 신유기도 시간에‘몸이 아픈 사람은 몸이 아픈 부위에 손을 얹으라!’하셔서 말씀대로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날 따라 머리가 띵하고 고통스러웠는데, 신유기도가 끝난 후에 즉시 씻은듯이 머리가 낫고 시원해 졌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올 때마다 즐거움이 넘쳤습니다.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신기했습니다. 교회 등록 후, 3주가 지난 후, 2009년 1월 하순 경, 전라남도 화순으로 현장 일을 가게 되었는데 다리와 온몸이 아파 고통스러웠습니다. 현장 일을 하는 사람이 다리도 아프고 온몸이 쑤시니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밤이면 더욱 온 몸이 쑤시고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양목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몸이 아프다고 말씀드렸더니 전화로 간절하게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전화로 몇 번 기도를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전화로 기도를 받으면 그 날은 몸이 가볍고 시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루만 지나면 또 다시 몸은 아프기만 했습니다. 너무나 몸이 괴로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양무리순복음교회 가서 주일 성수 할 수 있도록 보내주세요!”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 참다 못해 토요일 무작정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 주일 예배를 양무리순복음교회에서 드리고 곧장 다시 전남 화순 현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주일 예배를 드리고 화순으로 내려간 다음날 꿈 속에서 두분 목사님께서 황금색의 옷을 입고 나타나셔서 저의 아픈 두 다리를 하나씩 붙들고 톱으로 절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다리 두 개를 가져와 붙이시면서 “박집사님! 시원하시죠? 하나님께서 고치셨습니다” 하는데, 분명하고도 또렸한 음성으로 누군가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음성이 들리면서 곧장 저의 아픈 두 다리와 온 몸이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확신이 들면서 잠을 깼습니다. 그 날 오후에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워 목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두 분 목사님께서 꿈 속에 나타나 제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시고 새 다리를 붙여 주셨습니다.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은 다리가 아프지 않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하면서 정신없는 사람처럼 말을 했더니 목사님께서 “네 예수님께서 고쳐주셨군요!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아프던 몸이 너무나 시원하고 평안합니다. 저의 아픈 몸을 고쳐 주시고 믿음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돌립니다. 할렐루야!
최정남 권사 (53세, 양무리순복음교회)
태전동에서 여성브랜드로 의류판매한지 9년째 접어든다. 2008년 7월경에 과로뇌출혈로 119에 실려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고 한달을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왼쪽 손과 왼발을 못쓰고 말도 어눌한 상태에서 퇴원했다. 할 일 많고 한참 공부해야할 당시 고(2) 중학생(1) 학교 뒷바라지도 해야 하는데, 몸도 말도 제대로 되지 않고,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도 거의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류매장의 문은 열어야 하겠기에 일하는 직원을 두고 영업을 했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너무도 나약해진 내 자신속에서 매일 남편의 부축을 받고 살면서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나? 이대로 죽음으로 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공포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6년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원을 다니며 예배를 드린 나였지만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아침에 식구들이 모두 집을 나가고 나면 두려움에 휩싸여 힘들게 기도원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양무리순복음교회를 섬기던 분이 찾아와 양무리순복음교회 와서 신유의 은사를 받은 목사님의 기도를 받아보라고 네 차례나 권유를 받았지만 난 아무 곳에나 가서 “좋다”고 머리 내밀고 안수기도 받는 그런 신앙인 아니라 하면서 절대 거절했다. 매장을 정리하고자 권리금을 붙여 매장을 매물로 내 놓았다. 그 날 오후, 날 양무리순복음교회로 인도하려는 분이 와서 안수기도 받고 고침을 받고 애들 키우고 매장을 계속할 생각을 해야지! 왜? 가게를 내놓을려고 하느냐고 화를 내며 가는 것이었다. 곰곰히 생각하다 교회는 옮기지 않아도 내가 신유은사가 있는 목사님께 안수받고 나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양무리순복음교회에 첫 발을 내 디뎠다. 지금의 교육관 성전에 성도들의 박수소리 음향소리 때문에 머리가 더 아프고 예배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말씀이 끝나고 어떤 분이 나를 앞으로 끌다시피 데리고 나갔는데, 목사님의 안수기도에 정신이 몽롱해지고 뒤로 몸이 자꾸만 넘어지려 하는걸 난 진땀을 빼며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왜 힘이 없고 넘어지려하는지 의심하면서... 먼저 섬기던 교회에서 주일 11시 예배를 드리고 양무리순복음교회의 신유집회의 모든 예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드렸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 목사님의 안수기도에 방언을 하는 상태에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두 손을 모으고 가슴을 두드리며 얼마를 방언기도를 하며 예배를 끝마치고 또 다음 예배시간에 임재를 통해 하나님께서 날 고쳐주시겠다는 말씀을 받았다. (단 10:19)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의 말씀이었다. 말씀을 받은 이후로 더욱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배가 꿈틀거리며 조금씩 안 좋았던 부분이 회복되고 몇 개월동안 매 예배 때마다 주님의 임재로 아픈 몸이 치료되었다. 그러기를 두달 여.. 걸음도 온전해지고 손놀림도 자유하게 되고 어눌한 말도 아파했던 마음의 상처까지도 모두 다 치료받았다. 여호와의 임재의 재단... 이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양무리순복음교회에 등록하고 치료의 은혜를 입은 주님과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며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전윤정 권사 (42세, 양무리순복음교회)
예수 믿기 전, 절에 다니는 언니의 영향으로 절에도 다녀보고 할머니 때부터 불교를 믿던 집안이라 당연히 교회와는 담을 쌓았다. 친정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이런 저런 안 좋은 일이 자꾸 생기자 친정 언니는 “가족들이 절에 가서 빌어야 되는데 나 외에는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으니 집안이 안되지!”하면서 절에 다닐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가까운 절이 어디없나? 찾아보고, 가보기도 했지만 멀기도 하고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태전동으로 이사하여 부업을 시작하였고 힘들지만 견딜만 했는데, 어느 날, 부업을 하는데 갑자기 기운이 쫙 빠지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 매일 같은 생활인 이런 삶에 회의가 느껴졌다. 이러다가 내 평생 이모양 이꼴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나는 진정 누구인가? 라는 존재의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답답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생각하기를 “아 이렇게 우울증이라는 것이 와서 사람들이 죽는다더니 이런 경우인가 보다”하고 멍하니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구나! 나도 의지할 종교를 찾아 이런 어둠의 생각에서 벗어나고 새 희망의 빛을 받아야 우울증의 늪에 빠지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TV의 연말 시상식에서 보면 수상자들이 거의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소감을 들을 때면 정말 교회에 다니면 저렇게 잘 풀릴까?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일까? 진짜 경험한 사람이 있을까? 그런 교회가 있으면 믿어봐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양무리순복음교회』에는 하나님을 경험한 분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때마침 큰아이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엄마가 『양무리순복음교회』로 인도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가 아토피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한여름에 열도 많은 아이라 시도때도 없이 긁어서 상처와 멍이 심하게 생겨 이 병원 저 병원 큰 병원도 다녀보았지만 약은 바를 때 뿐이고 차도가 없었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인 것 같아 한없이 울기만 하다가 서툴지만 집에서 기도를 드렸다. 교회 집사님께서 내 마음을 알고 믿음으로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으면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는 말을 듣고 매주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꾸준히 받았다. 기도 받은지 두달 쯤 되어서 부터 호전되기 시작하더니 바로 그 심하던 아토피 피부병이 깨끗이 치료가 되었다.
어느 날, 부업을 무리해서 일하다 보니 허리가 갑자기 아파 오더니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아파 와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촬영했는데 의사선생님이 “아직 젊으신데 벌써 퇴행성이 왔네요!”하는 말에 앞이 캄캄하였다. 큰일났구나! 하는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목사님께 기도를 받아야지! 그 길만이 내게 살길이라” 생각하고 주일날 목사님께 사정을 말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고쳐주십니다.’말씀하시며 안수 기도를 해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아픔의 고통이 오래 갈 것만 같았는데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뻣뻣하던 허리가 이리저리 누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너무 놀라고 기뻐서 무릎꿇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허리를 고쳐주신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많이 외치며 기도를 하였는지 모른다. 퇴행성 허리 디스크를 고쳐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늘 동행하여 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감사하여 매일 새벽 기도를 드리며 호산나 성가대에서 찬양으로, 주일 점심식사 후의 설거지 봉사로, 영광돌리며 기회 닿는대로 복음을 전하고자 힘쓰고 있다. 치료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이정자 권사 (65세, 양무리순복음교회)
78년 어느날, 이웃에 사는 분의 전도를 받아 교회를 갔다가 너무나 어색해서 뒷걸음질을 쳐서 나왔으나 계속된 전도에 결국에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목사님의 설교에 졸기만 하여 무슨말씀을 하셨는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도 모르고 주일에 일이 있으면 별다른 생각없이 교회를 빠지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그러던 중 성남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저희 딸이 모란 근처에 집을 알아보자하여 주차를 하고 들어간 곳이 이흥순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부동산 사업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권사님께서 제가 살 집도 열심히 물색해서 알아봐 주시는데, 그 보다 더 교회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하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은 교회면 저도 다니겠다고 하여 권사님을 따라 양무리순복음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양무리순복음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알아듣기 쉽고 귀에 쏙쏙 들어오고 마음에 와 닿는 신기한 은혜가 내게 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2013년 1월 갑자기 다리가 저리고 아프고 쑤시고 통증이 점점 심해져 견딜 수 없어 성남 정정형외과 병원에 가서 MRI 진찰을 받았더니 뜻밖에도 요추 3번, 4번, 5번 협착증에서 오는 현상이며 빠른 수술을 권유하여 3일 후, 1월 14일(월)에 수술하기로 결정하였다. 토요일에 목사님들께서 심방을 오셔서 기도를 받았으나 통증은 여전했다. 다음날(1월 13일) 주일이라 아픈 다리를 이끌고 주님앞에 나아가 간절하게 “하나님! 나 어떻게 합니까? 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주님 내 아픈 다리를 고쳐 주시옵소서!” 예배중 엎드려서 기도를 간절히 드렸다. 예배가 끝날즈음 목사님께서 강대상에서 이정자 집사님! 하고 호명을 하시더니 집사님! 주님께서 수술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직접 고치실터이니 이번주부터 열심히 예배에 나오십시요! 하는 것이었다. 이 때 나도 모르게 “목사님의 말씀이 믿어지면서 아멘”를 외쳤다. 그 때부터 아픈 다리를 이끌고 모든 예배를 다 참석하는데 너무도 고통스런 아픔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고쳐주신다고 말씀하셨으니 믿습니다. 믿습니다. 속으로 외치면서 기도를 드리고 안수를 받았더니 신기하게도 2주만에 통증이 싹 사라졌다. 목사님의 선포하시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 1개월간 꾸준히 안수를 받았더니 완전히 치료되어 걷고 뛰어다닐 수 있게 회복되었다.
허리 협착증을 치료하신 예수님은 “나의 좋은 치료자”이십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더욱 4차원의 영성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기로 다짐합니다. 저와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목사님들의 영성있는 생명의 말씀에 큰 권능이 나타나고 살리는 주님의 영의 역사는 모든 인생을 살리는 큰 능력이 있음을 직접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사님들께서 모든 성도님들을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영적인 말씀을 잘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희 교회 성도님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처음 오신 낯설은 성도님들까지 미소와 사랑 그리고 섬김으로 헌신하며 저에게도 용기와 겪려를 아끼지 않고 기도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나의 병을 치료하신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예수님을 전하며 내 작은 입으로 간증하며 교회의 부흥에 힘이 되어 열심히 살겠습니다. 할렐루야!
이순옥 집사 (53세, 양무리순복음교회)
일찍 예수님을 영접하여 열심히 교회봉사도 하며 믿음생활을 하던 중, 예수믿는 청년이 구혼을 해 왔지만, 결혼조건이 맞지 않아 내 조건에 맞는 신랑감을 찾아 불신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내 조건에 맞는 불신 결혼은 삶의 고난의 시작이었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여 돈벌기 위해 직장을 다녀야 했고 겨우 주일성수 교인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러던 2011년 초, 감기 몸살과 피곤함이 계속되어 병원 검사를 하니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약을 먹으면 치료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기침이 심해져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천식”이라 했다. 처방해 준 약을 다 먹고 난 후, 10일 작정금식 기도를 하였다. 금식 후 보호식 2일째 되는날 회식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에 고기를 먹고 말았다. 다음 날부터 얼굴과 몸이 퉁퉁 붓기 시작하여 다시 3일 금식을 하였다. 그러나 더욱 증세가 악화되었고 급기야 물도 마실 수가 없었다. 차병원의 정밀검사 결과 “폐암 말기”라고 했다. 또한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고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담당의사는 저를 간호하는 언니에게 “20일을 넘기기 어려우니 환자 곁을 떠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암세포가 다 전이되었음에도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주시면 마음이 담대해지고 죽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앞에 불순종한 일, 주의 종을 향한 말, 등등 회개기도가 나오는 것이었다, 목사님께서 병원에 오셔서 주신 말씀을 붙들고 더욱 간절히 병원침대를 붙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데, 죽음보다 염려되는 것이 있었다. 죽음 후 하나님 앞에 설 때를 생각하니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운 것 뿐이었다. 평생에 주님을 위하여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말씀이 불현듯이 두려움으로 엄습했다. 목사님께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여 주님의 치료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차피 통증의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밤낮없이 오직 기도에 매달렸다. 기도하는 중, 신기하게도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것같은 찬송가가 들리는데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죄 짐을 풀었네”1-4절까지 찬양이 내 귓전에 울려 퍼졌다. 또한 (출 15:26)“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니라”하는 말씀을 받았다. 병원의사가 죽음을 준비하라는 20일이 지나고 60일이 지났는데도 도리어 몸의 컨디션은 점점 좋아졌고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기도로 환자복을 입고 주일날 본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드디어 3개월 째에 퇴원하였고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각오로 화요일과 금요일 신유집회에 참석했는데, 신유집회 시간 목사님의 안수기도 때마다 성령의 불이 강하게 임하였으며 성령의 불세례를 수차례 받으면서 온몸에 퍼진 암세포가 죽어 없어지는 영적느낌을 받았다. 이후 몸은 급속히 좋아졌고 2011년 7월에 폐암말기 사형선고 판정을 받은 내가 지난해 12월초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 CT촬영을 한 결과, 담당의사는 CT필름을 보시면서 암세포가 완전히 없어졌고 완치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저는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작년 초에 좋은 교회가 있다 해서 다른 교회를 잠시 다녔으나 병든 몸으로 다시 양무리순복음교회를 찾게 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는 양무리순복음교회임을 다시금 증거해 주신 것이다. 병든 몸으로 교회를 다시 찾았을 때,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 교회 목사님들께 감사드리며 생명수 한의원 부부와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입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손길로 병원 치료비와 생활비, 자녀 양육비까지도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셨다. 폐암말기, 죽음에서 생명을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남은 인생은 세상의 헛된 욕심버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며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믿음으로 살고 전도하며 찬송하면서 영혼구원을 위해 살렵니다. 할렐루야!
이경자 권사 (61세, 양무리순복음교회)
2009년 봄에 양무리순복음교회에 처음 나왔다. 장로교회를 섬기던 중 40세된 결혼한 아들이 밤에 잠을 자다 깨어 물 먹으러 방을 나왔다가 주저 앉아 있는 것을 며느리가 보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들을 119를 불러 병원에 가니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한다고 해서 서둘러 수술실로 바로 들어갔다. 기가 막혀서 예수님만 찾으며 “주님! 의사의 손길 붙들어 주셔서 핏줄하나 잘못 건드리지 않고 주님! 수술 성공케 해 주셔서 정상인으로 생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중에 깜박 잠이 들었다. "아들이 꿈속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엄마”하며 나 괜찮으니 걱정 말라해서 아들의 몸을 위아래로 만지다가 잠에서 깼다". 수술후에 주님만 의지하며 뇌출혈로 정상의 몸이 아닌 아들을 간호하며 생활하던 중에 병원에서 어느날 며느리가 "어머니" 하면서 양무리순복음교회 전단지를 주며 이교회에 나가보세요! 하나님의 치료의 역사가 강하게 임하시는 교회인가봐요! 하며 이야기를 하기에 속으로 “며느리가 자기 남편이 아프니까 얼마나 답답해서 저럴까?” 하고 그래 가보자! 하고 교회에 와서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 말씀그대로 세상의 것 비유없이 오직 말씀만으로 원고도 없으신 상태에서 말씀을 선포하시니 예수님의 능력과 권능이라!! 예수님께서 목사님께 큰 은사를 주셨구나! “그래 바로 여기다” 하고 “내가 찾던 목사님이시구나!” 하고 수요예배 나와서 그 첫 주일 날에 즉시 온 식구가 교회에 등록을 하고 열심을 내어 주님께 간절히 간구하며 모든 치유의 역사하심을 의지하며 예배를 드렸다. 수많은 목사님을 만났었는데 이런 확신이 없어서 안수기도 받지 않았었는데.. 아들의 건강이 예배의 단을 쌓으면서 좋아지고 있다. 화요 축복집회 기도시간 중에 목사님 안수기도 해주시니 발가락이 펴졌다고 아들이 이야기 해주었다. 기뻐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목사님께서 아들의 병 고침받는 날까지 알고 계시나 믿음이 더욱 견고해져서 시험들어 믿음이 약해질까 염려하셔서 알려주지 못하나 오직 말씀, 찬양 모두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하라고 당부하시며 치료의 확신을 주셨다. 지금은 아들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시간에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임재를 통하여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신다.
주님의 치료하시는 손은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났다. 작년 여름부터 발바닥에 종기가 생겨 별약을 다 썼어도 낫질 않았다. 왜냐하면 혈당 수치가 높아 치료되지 않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대형 병원에 가서 수술을 권장하는데, 수술을 받아도 완전히 치료된다는 확신이 없었다. 수술을 포기하고 주님의 치료의 손길을 기다리며 간절히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도중 목사님의 안수기도로 발바닥의 종기가 씻은 듯 깨끗이 낫게 되었다. 예수님의 치료하시는 손! 너무도 감사하다. 말씀하신바 못 고치실 것이 없으시는 하나님 너희의 믿음을 굳건한 반석위에 세우라하신 말씀 의지하며 헌신하시는 두 분의 목사님! 오직 성경말씀만을 대언하시는 귀한 목사님 모시고 신앙생활 하게 되어 너무 너무 기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할렐루야!
송순희 집사 (54세, 양무리순복음교회)
여고 1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하던 남편을 만나 두 딸을 낳아 키우면서 신앙으로 양육하려 애쓰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하며 남편과 저는 교회에서 필요한 여러곳을 봉사하며 기쁨의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뜻밖에 평소에 존경하고 신뢰하던 목사님의 좋지 못한 모습을 보고 도망치듯 그 교회를 나와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큰 교회에서 주일예배만 드리는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지냈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왜? 저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시느냐”며 투정을 많이 했지요! 당연한 결과로 경제적 어려움과 여러 가지 힘든 일이 함께 겹쳐 왔다. 비교적 어려움 없이 성장하고 살아왔던 저에게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들을 보내다 2011년 9월 건강에 이상이 있어 찾았던 병원으로부터 간경화 말기이며 이미 간기능은 70~80%가 손상되어 짧게는 1개월, 길면 3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의 판정을 받았다. 분당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한 내가 사는 길은 오직 간이식 수술뿐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간 이식 방법을 찾기 위해서 검사했으나 간 조직이 맞지 않아 이식받을 수 없었다. 타인의 간을 기증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이 어렵고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간 이식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데, 제 차례까지 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외에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양무리순복음교회를 소개받은 것은 분당 서울대병원에서였다. 제가 누워있던 병실로 두 분 권사님이 방문하던 날을 기억한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고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안수기도 받는 분들을 좋지 않게 여기고, 성격도 까칠한 저에게 전도지를 주시는 권사님의 전단지를 흔쾌히 받고서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음날 양목사님과 장목사님이 심방을 오셔서 안수해 주셨다. 목사님들께서 두 번째 심방오시고 기도해주셨던 날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께서 “내가 고쳐주리라! 내가 고쳐주리라” 두 번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리며 예수님께서 맑은 물이 흘러내려가는 강가운데서 새파란 새싹처럼 싱싱한(저의 간이라고 생각되어졌다)것 두 쪽을 들고 그 강물에 씻은 후, 건져내어 저에게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이었다. 목사님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그 때 저의 모습은 복수 때문에 배가 불러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였으며 황달로 인해 눈까지 노랗게 되었고 호흡까지 힘든 상황인데도 나는 꿈에 만난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 제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방법 외엔 다른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생면부지의 타인으로부터 간을 기증받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분의 간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연락이 왔다. 문제는 기증자와 나의 생체 조직이 맞아야만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는데, “기증자의 간이 나에게 너무도 딱 맞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요! 기적이었다.” 간 기증자가 있어도 조직이 맞지 않으면 수술이 불가능한데, 정확히 맞는 것이었다. 아산병원으로 병원을 옮겨 12시간에 걸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고 무균실에서 1개월 동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였고 다시 1개월 후, 2개월만에 완전히 회복되어 퇴원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되찾은 후,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전에 실패했던 신앙의 문제점과 해답도 얻었다. 나 때문에 조롱과 멸시와 큰 고통을 견디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감격과 감동으로 눈물 범벅이 되어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예배를 통해 주님은 내 상처난 심령을 치유하여 주셨다. “이제는 주님의 증인으로 살겠습니다. 제게 힘을 주세요! 주님의 기쁨이 되겠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죽은 나의 두 개의 간을 다시 살려주시고 생명을 연장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한 나를 양무리순복음교회로 인도해 주신 권사님들께 감사드리며, 쉽게 사람을 사귀지 못하는 저에게 다정하게 다가와서 손잡아주시고 사랑을 보여주신 우리교회 성도들의 따뜻함에도 감사드린다. 나를 살리신 예수님을 평생에 증거하며 주님의 기쁨 되어 살기를 다짐한다. 할렐루야!
박은희 집사(양무리순복음교회)
저는 유복한 가정에서 3남매 중 둘째로, 지극히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왔습니다. 순탄치 못했던 결혼생활, 홀로 아이를 키워야하는 인생의 이중고를 겪으며 삶을 이어가던 중 서른 중반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동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주님을 체험하고, 내 삶에 계시는 주님을 느끼고 싶었지만, 매번 주님은 아주 먼 곳에 계신 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것을 벗어나지 못한 채 술을 삶의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술은 저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건강은 악화되어 나날이 야위어갔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과 병든 노모와 어린 딸을 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저는 점점 나약해져갔습니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 이송되는 그 날까지도 저는 주님보다는 고단했던 삶의 끝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눈앞이 흐릿해져가고, 사지가 마비된 상태로 병원을 찾았지만, 상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신장 부전, 장 협착, 간경화, 췌장염, 대사성 산증, 2번의 심정지 등 역시나 저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의 남은 시간이 2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는 병원 측의 설명에 모두들 망연자실했습니다. 저의 가족들, 교인들 모두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장기들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기계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고, 의사선생님들 또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서울대학병원에 치료를 받으려고 가족들이 급히 문의한 결과, 참조은병원에서 저의 진료와 사진 자료를 전해받고서는 “저희 병원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하니 보내셔도 소용없습니다”라는 통보를 받고 온 가족들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희망을 말하지 않았지만 두 목사님께서는 끝까지 제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끊임없이 중환자살에 심방 오셔서 기도하시던 날 양목사님께서 안수를 하시는데, 주 예수님의 강한 권능의 손이 만져주시고 장기가 확 풀리고 움직이면서 “내가 고쳤다” 그러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두 목사님의 끊임없는 안수기도로 인해 죽어있던 장기들이 다시 꿈틀거리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이 없었던 제가 의식이 돌아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환자실에서의 16일이라는 긴 사투를 끝내고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게 되었고 빠른 속도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뻐 축하해주시면서도 무척 놀라워 하셨습니다. 병원 의료진들도 저의 회복속도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의 저는 온 몸의 장기들이 제 기능을 찾고, 예전보다 더 건강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간증문을 쓰면서도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능력을 체험한 저로서는 한없는 감사와 찬양만이 제 마음 속 깊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전의 저는 제 인생을 제가 스스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주님은 지금껏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주님은 제 삶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십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새로운 생명을 통해서 이제는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송축하며 주님을 전하는 증인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의 간증이 단순히 죽음의 강을 건넜다 돌아온 삶의 이야기나 주님을 증거하는 도구가 아닌 주님을 향한 진정한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제 인생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셨기에 저는 주어진 새로운 생명을 통해서 주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주님이 하셨음을 고백하고 또 고백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할렐루야!
박옥희 권사 (83세, 양무리순복음교회)
예수님 영접한지 13년이 되었다. 결혼해서 보니 시부모님들께서 모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데, 이상하게도 자녀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결국은 나도 자연스럽게 남편을 따라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30년 동안 교회를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내가 딸을 시집보냈는데, 그 딸이 결혼한지 7년이 되어도 애기를 낳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도 급한 나머지 대전에 있는 계룡산에 가서 무작정 기도같지 않은 기도로 무조건 딸 아이에게 애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계룡산 산기슭에서 기도하는 나에게 먼발치에서 이번 달에 애가 들어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기쁜 마음으로 ‘아멘’하고 산기도를 마치고 내려와 곧 바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산에서 들은대로 얼마되지 않아 딸아이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첫 딸을 출산했다. 사실 나도 결혼하여 둘째를 낳았을 때, 둘째가 태어난지 3일만에 죽는 아픔이 슬픔이 있었는데, 옆집 아줌마가 딸을 낳고 병들어 젖을 먹일 수가 없었다. 나도 애기를 낳았지만 내 아이는 죽고, 젖은 불고, 결국 그 딸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그 딸을 수양딸을 삼아 양육하게 되었다. 수양딸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고 있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교회 나갈 때는 계룡산에서 들었던 음성이 있어서 두려웠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교회 나가는 나에게 마귀의 훼방이 믿음의 길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두려움을 가져다 준 것임을 뒤늦게 깨닫고 마귀를 물리치는 기도를 하자, 두려움의 마귀는 떠나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다.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고 있던 중, 아들이 경영하는 학원 기사의 매형이 위암 판정받고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 기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 사람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치료된다는 마음의 확신이 왔다. 결국 그 사람은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그 분이 섬기는 교회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깨끗이 고침을 받았다. 나는 기도 중, 가끔 눈이 번쩍여서 눈을 뜨면 하얀 보자기 쓰신 분이 강물이 출렁거리는데 획 지나가는 환상을 보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 믿음생활을 잘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 전전하다 보니 기도생활이 소홀이 되어 가까운 순복음교회를 찾아 신앙생활하기로 마음먹고 순복음교회를 찾던 중, 양무리순복음교회 간판을 보고 본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와 금요신유집회 참석한지 3번째 집회 때에 목사님께서 오늘 집회에 참석하신 분 중 목디스크로 고생하시는 분이 다 나았습니다. 하는 말씀이 선포되자 “아멘”하고 받았더니, 목 디스크로 아팠던 몸이 깨끗이 다 낫는 신유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계속 신유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던 중, 목사님의 안수기도로 무릎관절이 씻은 듯 다 고침을 받았다. 2007년도부터 양무리순복음교회 집회에 나오기 시작하였으나 주일은 여전히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나갔다. 그러던 중 양무리순복음교회로 등록해야겠다는 마음이 불일듯 일어났고, 2009년 6월 양무리순복음교회 등록하였다. 2010년 1월 달 신유집회 때에 항상 손이 저리고 아팠었으나 기도하는 도중 환상을 보여 주시고 다 나았다는 확신의 믿음을 주셨다. 그 뒤로 지금까지 손 저림의 증상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편안하다. 교회를 잘 나가던 아들이 실족하여 현재 중단하고 있어 교회 나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많은 양무리순복음교회로 인도해 주신 치료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
박봉호 장로 (57세, 양무리순복음교회)
고향 해남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에 상경하여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보리라 하는 노력으로 이일 저일, 힘든 일 마다않고 열심히 회사에 다니면서 기술을 익혔고 기술을 습득한 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면사 기술사가 되어 봉급도 남부럽지 않게 많이 받으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아내와의 사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시부모님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왜! 고추 하나 달고 나왔으면 좋으련만~~제가 들어도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시부모님들은 사대부 집안에 아들이 있어야한다고 하는 고정 관념이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줬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는 하나님을 믿으면 아들 낳는다는 말에 그 길로 동네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혼잣말로 교회다닌다고 아들 낳냐? 돈이나 갖다 바치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 친구의 소개로 태전동에 개척교회가 있으니 그 곳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하는 말에 아내는 2000년 5월 첫주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면사 기술자로 열심히 일하던 중, 아내가 공장을 설립하여 우리 공장을 갖자고 했을 때, 나는 펄쩍 뛰면서 돈이 어딨냐? 했는데, 아내가 시부모님들을 설득하여 그 당시 큰 돈인 3,000만원을 받아 와서 공장 임대를 얻고 기계를 5대를 사들였다. 기계값만도 3,500만원이나 되는데, 나머지 공장 세는 어떻게 하느냐? 했더니 살고 있는 방을 빼서 내면 되고 나머지는 빚을 내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아내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공장을 주신다고 했다면서 공장 이름도 “산성섬유”로 주셨다고 하면서 밀어 부쳤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공장은 시작되었는데 면사의 달인과 같았던 나는 공장에서 가공해 내는 실마다 주문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주문은 밤새도록 24시간을 가동해도 다 마치지 못할정도로 일이 넘쳐났다. 그러다 보니 들어오는 수입은 매달 공장세와 빚을 갚고도 700만원~800만원 씩 돈을 버는 것이었다. 돈을 버는 재미가 들고 빚고 다 청산하고 있을즈음 같은 계통의 사장단들의 모임이 있어 회식자리에 나가게 되었는데, 갈 때마다 술과 도박(특히 카드놀이)이 계속되었다. 도박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못했던 나도 술을 마시면 나도 모르게 도박에 빠지게 되었고 도박은 점점 큰 판으로 벌어졌다. 아내와 나는 숨박꼭질하듯 일이 끝나면 나를 데리러 오는 무리들을 따라 숨어서 도박을 하고 아내는 나를 찾으러 백방으로 다니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기까지 하였다. 결국 도박으로 인하여 지게 된 빚은 2억원이 넘게 되고 신용불량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도박빚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있을 때, 양무리순복음교회 목사님이 심방 오셔서 그러면 나랑 같이 기도원에 함께 가자! 해서 처음으로 교회 나가 다음날 금식기도원으로 올라가서 목사님과 함께 10일 금식을 하게 되었다. 금식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때이지만 목사님께서 때때마다 함께 금식하시면서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는데, 제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그렇게 힘들다던 금식기도를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금식기도를 마치고 술과 도박과 담배를 끊게 되었고 은혜받은 날부터 일이 재미나고 힘들지 않으며 항상 기쁨이 심령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열심히 교회 출석하면서 목사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에 순종하기로 다짐하면서 주님만을 바라보고 공장일에도 최선을 다했더니 2억원이 넘는 빚을 딱 12년만에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2014년 9월에 신장에 담석이 있어서 떼굴떼굴 구르듯 너무 아파 119를 불러서 응급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목사님이 떠올라서 새벽녘인데 전화로 기도를 요청하고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전화 안수기도 받고 불과 1분도 채 안되어서 아랫배가 시원하고 소변이 마려우면서 119에서 내려 길에서 소변을 보았는데, 아픈 것이 싹 사라지고 그 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아내의 헌신과 봉사의 결과로 제 여식 중에 큰애는 대학에 4년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서도 거의 돈이 들지 않도록 하여 석사학위를 받게 되었고 지금은 좋은 병원에 건강하게 근무중입니다. 저를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신 나의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돌립니다. 부족한 저를 주님께서 교회의 장로로 세워주심에 감사드리며 목사님의 가르침을 따라 죽도록 충성하며 순종하기를 굳게 다짐합니다.
박복희 집사 (양무리순복음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행복한 생활로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우상을 섬기는 완고하신 부모님의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삶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였습니다. 1988년 3월 결혼하였는데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였고 아내 마저 2년후 가출하여 결국 98년에 이혼을 하였습니다. 술로 타락하며 고통과 괴로움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어느날 죽음을 결단하고 자살까지도 시도했습니다. 그러던 2000년 11월 전도를 받아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복희야 눈을 뜨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겔 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음성을 듣게 되었고 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믿으며 은혜속에 살아가도 힘든 일을 하다보니 몸이 많이 아프고 또 많이 피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양무리순복음교회 다니시는 조백연 집사님이 우리교회를 나가보자고 하여 2008년 12월 24일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크리스마스 이브날 양무리순복음교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주일(성탄절)에는 교회에 등록까지 했습니다. 교회에 등록하던 첫 주일 예배 때, 목사님의 신유기도 시간에‘몸이 아픈 사람은 몸이 아픈 부위에 손을 얹으라!’하셔서 말씀대로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날 따라 머리가 띵하고 고통스러웠는데, 신유기도가 끝난 후에 즉시 씻은듯이 머리가 낫고 시원해 졌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올 때마다 즐거움이 넘쳤습니다.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신기했습니다. 교회 등록 후, 3주가 지난 후, 2009년 1월 하순 경, 전라남도 화순으로 현장 일을 가게 되었는데 다리와 온몸이 아파 고통스러웠습니다. 현장 일을 하는 사람이 다리도 아프고 온몸이 쑤시니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밤이면 더욱 온 몸이 쑤시고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양목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몸이 아프다고 말씀드렸더니 전화로 간절하게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전화로 몇 번 기도를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전화로 기도를 받으면 그 날은 몸이 가볍고 시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루만 지나면 또 다시 몸은 아프기만 했습니다. 너무나 몸이 괴로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양무리순복음교회 가서 주일 성수 할 수 있도록 보내주세요!”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 참다 못해 토요일 무작정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 주일 예배를 양무리순복음교회에서 드리고 곧장 다시 전남 화순 현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주일 예배를 드리고 화순으로 내려간 다음날 꿈 속에서 두분 목사님께서 황금색의 옷을 입고 나타나셔서 저의 아픈 두 다리를 하나씩 붙들고 톱으로 절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다리 두 개를 가져와 붙이시면서 “박집사님! 시원하시죠? 하나님께서 고치셨습니다” 하는데, 분명하고도 또렸한 음성으로 누군가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음성이 들리면서 곧장 저의 아픈 두 다리와 온 몸이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확신이 들면서 잠을 깼습니다. 그 날 오후에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워 목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두 분 목사님께서 꿈 속에 나타나 제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시고 새 다리를 붙여 주셨습니다.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은 다리가 아프지 않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하면서 정신없는 사람처럼 말을 했더니 목사님께서 “네 예수님께서 고쳐주셨군요!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아프던 몸이 너무나 시원하고 평안합니다. 저의 아픈 몸을 고쳐 주시고 믿음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돌립니다. 할렐루야!